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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보낸 휴가 셋째 날인 지난 30일 제주국립박물관을 찾았다. 마침 제주박물관에서는 중국 명나라 기행기인 <표해록>에 관한 기획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기획특별전의 이름은 <조선 선비 최부, 뜻밖의 중국 견문>이며, 전시기간은 2015년 7월 21일부터 오는 10월 4일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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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제주박물관 기획특별전 "조선 선비 최부, 뜻밖의 중국 견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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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기획특별전의 주인공은 최부이다. 최부(1454∼1504)는 조선시대 학자로 전라도 나주출신이다. 성종은 훈구파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서, 사림세력을 조정에 등용한다. 최부는 성종이 발탁한 사림세력 중의 한명이다. 최부는 점필재 김종직의 문하생이다. 최부는 1478년(성종 9) 성균관에 들어가서 한훤당 김굉필과 교유한다. 1485년 최부는 서거정과 함께 <동국통감>의 편찬에 참여하며, 홍문관에서 홍문관교리로 역임한다. 1487년(성종 18) 그는 추쇄경차관으로 임명되어, 부임지인 제주로 간다. 1488년 지방관으로 행정을 돌보던 중 최부는 부친상 소식을 듣고서는 나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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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제주박물관 기획특별전 "조선 선비 최부, 뜻밖의 중국 견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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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육지로 떠난 최부 일행은 거센 풍랑을 만나, 중국 저장성 해안으로 표류한다. 최부 일행은 항주에 정박된 이후, 왜구로 의심을 받아서 명나라 관리들로부터 신문을 받게 된다. 최부는 한문으로 필담을 통해서 자신들의 의사를 표한다. 최부 일행은 대운하를 따라 항주, 소주, 양주, 서주를 거쳐 북경으로 향한다. 최부는 중국 명나라의 풍습과 운하를 유심히 관찰한다. 신의주를 거쳐 최부 일행은 조선으로 귀국한다.
성종은 귀국한 최부에게 중국에서 보고 들은 내용을 글로 남기라고 명한다. 최부는 자신들이 관찰한 명나라에 관한 기록을 <중조문견일기>의 제목으로 책을 남긴다. 이 책이 <표해록>으로 전해지고 있다. <표해록>에는 148일간의 중국 여정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표해록>에는 명나라 당시의 생활상을 객관적으로 관점에서 기록되어 있다. 또한 최부는 자신들과 함께 표류했던 제주사람들에 대해서도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한다. 항해술, 날씨 변화를 읽는 방법, 민속신앙과 같이 15세기 제주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표해록>에 기록했다. 최부는 명나라에서 본 농업시설물인 수차에 많은 관심을 가진다. 그는 조선에서도 수차를 개발해서 농업생산에 활용할 것을 조정에 건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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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선비 최부, 뜻밖의 중국 견문> 특별기획전 설명 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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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 시절인 1498년 최부는 무오사화 사건으로 귀향을 가게되며, 1504년에는 갑자사화 사건으로 연산군에 의해서 죽음을 맞이한다. 이후 최부의 외손자인 미암 유희춘이 <표해록>을 재발간한다. 현재 전라도 해남에 있는 해촌서원과 광주광역시에 있는 무양서원에서는 최부와 유희춘의 신위가 모셔져 있다.
최부가 쓴 <표해록>은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일본 승려 옌닌의 <입당구법순례행기>와 함께 3대 중국 견문록으로 꼽힌다. 최부 일행인 42명 모두 큰 탈 없이 조선으로 귀국한다. 최부 일행은 거센 풍랑과 명나라로부터 왜구로 오인 받는 상황과 같은 역경을 모두 극복한다. 그 중심에는 최부가 있었다. 최부는 일행을 끝까지 책임지는 헌신적인 자세로 일행들을 통솔한다. 뜻하지 않은 표류에서도 그는 조선에 도움이 되는 새로운 문물을 눈여겨보고, 이를 실생활에 접목하려는 시도를 한다. 이러한 최부의 행동이야말로 진정한 지식인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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